한줄 요약
2005년 메이저리그에 등장한 저스틴 벌랜더가 2026년 9월 26일 디트로이트 코메리카 파크에서 자신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선발 등판을 마쳤다. 21시즌, 세 번의 사이영상,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세 번의 노히터. 하지만 마지막 순간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기록이 아니라 딸의 품에 안겨 마운드를 내려오는 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1.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코메리카 파크는 달랐다
야구선수에게 마지막 경기를 스스로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행운이다.
수많은 선수의 커리어는 예고 없이 끝난다. 부상이 마지막 경기가 되기도 하고, 어느 시즌 마지막 타석이 실제로는 선수 생활의 마지막 타석이었다는 사실을 몇 달 뒤 알게 되기도 한다. 특히 투수는 팔꿈치와 어깨라는 변수를 안고 산다.
저스틴 벌랜더는 적어도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마운드에 설 수 있었다.
2026년 9월 26일, 디트로이트 코메리카 파크.
상대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였다.
벌랜더에게는 통산 557번째이자 마지막 메이저리그 선발 등판이었다. 그는 앞서 2026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발표했고, 이날은 21년 동안 이어진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경기였다.
경기장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관중석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벌랜더 유니폼이 함께 보였다. 최근에 구입한 새 유니폼도 있었고, 십수 년 전부터 입어온 오래된 타이거스 유니폼도 있었다.
이 장면은 벌랜더의 커리어가 얼마나 길었는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줬다.
어떤 팬에게 그는 어린 시절 처음 본 에이스였고, 어떤 팬에게는 자신의 아이와 함께 다시 보게 된 전설이었다.
벌랜더는 평소 등판일이면 헤드폰을 쓰고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는 루틴을 유지한 선수였다. 경기에 들어가기 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은 달랐다.
그는 주변의 소리를 느끼려고 했다.
관중의 함성도 듣고, 경기장을 바라보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박수를 받아들이려고 했다.
야구선수로서 수천 번 반복했던 경기 전 준비가 이날만큼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됐다.
왜냐하면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이 길을 걸어 마운드로 향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 6개월의 공백, 그리고 마지막 경기를 위해 되돌린 몸
벌랜더의 마지막 등판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히 은퇴 경기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그는 정상적인 선발 준비 과정을 거친 상태가 아니었다.
2026시즌 벌랜더는 엉덩이와 햄스트링 문제로 오랜 기간 부상자 명단에 머물렀다.
마지막 메이저리그 경기 전까지 약 6개월 동안 빅리그 마운드에 서지 못했고, 실전 감각을 되찾기 위한 준비 과정도 일반적인 재활 등판과는 거리가 있었다.
정상적인 선발투수라면 불펜 피칭을 시작하고, 시뮬레이션 게임을 거치고, 마이너리그 재활 등판을 통해 20구에서 40구, 60구, 80구 정도로 투구 수를 점진적으로 늘리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다.
벌랜더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시즌이 끝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 등판을 위해 재활 과정 자체를 압축했다.
경기 전 마지막 실전 형태의 준비는 21구 규모의 시뮬레이션 게임 정도였다. 그 상태에서 실제 메이저리그 타자를 상대로 얼마나 오래 던질 수 있을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벌랜더 자신도 경기 전 “얼마나 던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단순한 이벤트 등판은 원하지 않았다.
타자 한 명을 상대하고 내려오거나 한 이닝만 던진 뒤 관중의 박수를 받는 은퇴식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실제 선발투수처럼 경쟁하고 싶어 했다.
그것은 벌랜더라는 선수를 설명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에게 선발투수는 단순히 경기 시작을 담당하는 포지션이 아니었다.
가능한 많은 이닝을 책임지고, 자신의 힘으로 경기의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이었다.
전성기의 벌랜더는 6이닝을 던지고 만족하는 투수가 아니었다.
7회, 8회에도 자신이 공을 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43세가 된 마지막 경기에서도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몸은 과거와 달랐지만 경쟁하는 방식은 끝까지 같았다.
3. 5⅓이닝, 91구, 6탈삼진 — 마지막에도 ‘진짜 선발’이었다
결과적으로 벌랜더는 예상보다 훨씬 오래 마운드에 남았다.
5⅓이닝.
91개의 투구.
5피안타.
1볼넷.
6탈삼진.
2실점.
그리고 직구는 여전히 시속 95마일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 기록만 떼어놓고 보면 한 명의 선발투수가 평범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경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황을 생각하면 전혀 평범하지 않다.
43세의 투수가 약 6개월 동안 빅리그 실전을 치르지 않은 뒤 90구를 넘게 던졌다.
벌랜더가 원했던 마지막 경기의 모습과 거의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는 추억을 만들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간 것이 아니었다.
타자를 잡기 위해 올라갔다.
구속만으로 압도하던 젊은 시절과는 투구 방식이 달라져 있었다.
전성기 벌랜더의 상징은 폭발적인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경기 초반보다 후반에 오히려 더 빠른 공을 던지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 가운데 하나였다.
타자가 벌랜더의 투구 수가 늘어나기를 기다려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보통 선발투수는 경기 후반 체력이 떨어지면서 구속과 제구가 흔들리지만, 젊은 벌랜더는 오히려 경기 후반에 100마일에 가까운 공을 던지곤 했다.
마지막 경기의 벌랜더는 그런 투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20년 넘게 쌓인 경험이 있었다.
언제 직구를 던질지.
언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을지.
어떤 카운트에서 변화구를 선택할지.
타자가 자신을 어떻게 노리는지를 읽는 능력은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힘이 줄어든 자리를 기술과 경험이 채웠다.
야구에서 노장 투수를 보는 재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젊은 시절에는 “내 공을 칠 수 있으면 쳐봐”라는 승부가 가능하다.
나이가 들면 같은 방식으로 살아남기 어렵다.
결국 투수는 변화해야 한다.
벌랜더는 그 변화를 성공적으로 해낸 선수였다.
그래서 20대에도 정상급이었고, 30대 후반에도 사이영상 경쟁을 했으며, 40대에도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4. 3,500개가 넘는 탈삼진, 숫자가 설명하는 21년
벌랜더의 커리어는 숫자만 나열해도 엄청나다.
그는 21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세 차례 사이영상을 받았다.
2011년에는 사이영상과 아메리칸리그 MVP를 동시에 차지했다.
두 번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올스타에는 10차례 선정됐다.
세 번의 노히터를 기록했다.
마지막 등판 이전 기준으로 3,554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MLB 역대 탈삼진 순위에서도 최상위권에 이름을 남겼다.
숫자가 커질수록 오히려 실제 의미가 잘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3,500탈삼진이 그렇다.
한 시즌 200탈삼진을 기록하면 정상급 탈삼진 능력을 가진 선발투수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 시즌을 10년 보내도 2,000개다.
벌랜더는 3,500개를 넘어섰다.
즉, 뛰어난 시즌을 한두 번 보내는 것으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실력만으로도 부족하다.
건강해야 한다.
오랫동안 선발 자리를 지켜야 한다.
부진한 시즌을 버텨내야 한다.
타자들이 자신을 분석하면 다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대의 변화에도 적응해야 한다.
벌랜더가 데뷔한 2005년의 메이저리그와 2026년의 메이저리그는 같은 스포츠지만 투수를 준비하고 분석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투구 회전수와 무브먼트가 정밀하게 측정되고, 타자의 스윙 궤도와 약점 역시 수많은 데이터로 분석된다.
투수들도 자신의 공을 과학적으로 설계하는 시대가 됐다.
벌랜더는 그 변화 전체를 선수로 경험했다.
초기에는 순수한 구위와 체력으로 타자를 지배했고, 후반기에는 데이터와 경험을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에이스가 됐다.
그것이 그의 기록을 단순한 누적 기록 이상으로 만든다.
5. 세 번의 노히터 — 벌랜더가 가장 벌랜더다웠던 경기들
한 경기에서 상대에게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는 것.
노히터는 야구에서 가장 특별한 기록 가운데 하나다.
투수가 아무리 완벽하게 던져도 수비 하나, 빗맞은 타구 하나, 내야 깊숙한 곳으로 흐르는 타구 하나 때문에 기록이 끝날 수 있다.
그래서 위대한 투수도 평생 한 번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벌랜더는 세 번 했다.
MLB 역사에서도 세 차례 이상의 노히터를 던진 투수는 극소수다.
첫 번째는 2007년 디트로이트 시절.
두 번째는 2011년.
그리고 세 번째는 휴스턴 유니폼을 입었던 2019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첫 번째와 세 번째 사이에 12년이라는 시간이 있다는 점이다.
12년이면 한 선수의 커리어 전체가 될 수도 있는 기간이다.
첫 노히터 당시 벌랜더는 강속구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젊은 에이스였다.
세 번째 노히터 당시에는 이미 수많은 경기와 부상을 경험한 베테랑이었다.
같은 노히터지만 그 과정은 전혀 달랐다.
이 기록은 벌랜더의 커리어가 단 하나의 전성기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에게는 여러 번의 전성기가 있었다.
젊은 파워피처로서의 전성기.
완성형 에이스로서의 전성기.
휴스턴에서 다시 만들어낸 후기 전성기.
대부분의 선수는 한 번의 전성기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벌랜더는 자신의 투구를 계속 바꾸면서 정상에 여러 번 올라갔다.
6. 디트로이트를 떠나 휴스턴에서 다시 전설이 되다
벌랜더의 이야기를 디트로이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2017년 시즌 도중 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됐다.
이미 충분히 화려한 커리어를 만든 뒤였다.
그 시점에 벌랜더의 전성기가 거의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휴스턴에서 벌랜더는 다시 리그 최고의 투수 가운데 한 명이 됐다.
2017년 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고, ALCS MVP에도 선정됐다.
이후 두 차례 더 사이영상을 추가했고, 세 번째 노히터와 3,000탈삼진도 휴스턴에서 기록했다.
2022년에는 또 한 번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이 두 번째 전성기가 벌랜더의 역사적 평가를 크게 바꿨다.
디트로이트 시절 기록만으로도 당대 최고의 투수 가운데 한 명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휴스턴에서 그는 ‘당대 최고’라는 범주를 넘어 역대급 투수들과 비교되는 커리어를 완성했다.
특히 나이가 들어서도 구속을 유지하고 공의 질을 개선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현대 스포츠에서 베테랑 선수의 커리어 연장은 단순히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회복.
영양.
훈련 방법.
투구 메커니즘.
데이터 분석.
부상 관리.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몸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벌랜더는 이러한 변화에 누구보다 집요하게 접근했던 선수였다.
그 결과 많은 투수들이 은퇴를 고민하는 나이에 다시 사이영상을 받았다.
7. 마지막 마운드에서 달려온 일곱 살 딸
그리고 마지막 경기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기록과 관계없는 장면에서 나왔다.
6회.
벌랜더가 첫 타자를 잡았다.
A.J. 힌치 감독이 마운드로 걸어나왔다.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제 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가 마운드로 달려왔다.
벌랜더의 일곱 살 딸 제너비브였다.
이 장면은 벌랜더에게도 사전에 알려지지 않은 일이었다.
힌치 감독과 벌랜더의 아내 케이트 업튼이 준비한 깜짝 계획이었다.
딸이 달려와 아버지를 안았다.
벌랜더는 그대로 감정을 터뜨렸다.
그는 경기 후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 순간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고 설명했다.
야구선수의 은퇴 장면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
관중에게 모자를 벗어 인사할 수도 있다.
동료들이 마운드로 나와 포옹할 수도 있다.
전광판에서 과거의 영상을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벌랜더의 마지막은 가족이었다.
그것이 묘하게 그의 커리어와 맞았다.
21년 동안 프로야구선수로 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시즌은 길다.
스프링캠프부터 정규시즌, 포스트시즌까지 이어지면 선수는 한 해의 상당 부분을 원정과 경기장에서 보낸다.
벌랜더 역시 은퇴 후 가장 기대하는 것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왔다.
그리고 마지막 마운드에서 딸이 직접 달려왔다.
세 차례 사이영상보다도, 수천 개의 탈삼진보다도 그날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가장 오래 남을 가능성이 높은 장면이다.
8. 한 시대의 선발투수가 떠난다는 의미
벌랜더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을 때 선발투수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지금과 조금 달랐다.
에이스라면 7이닝 이상을 던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완투와 200이닝은 여전히 중요한 상징이었다.
선발투수가 경기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야구였다.
2026년의 메이저리그는 많이 달라졌다.
투수의 평균 구속은 높아졌고 불펜은 세분화됐다.
선발투수가 두 번째, 세 번째 타순을 상대할 때 나타나는 성적 변화도 분석한다.
투구 수와 부상 위험 관리 역시 훨씬 정교해졌다.
6이닝을 안정적으로 막으면 훌륭한 선발 등판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됐다.
벌랜더는 이 두 시대를 모두 경험했다.
그와 비슷한 세대의 맥스 슈어저, 잭 그레인키 등과 함께 ‘경기를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전통적인 에이스 이미지를 현대 야구까지 이어온 투수였다.
그래서 그의 은퇴에는 조금 다른 감정이 따라온다.
한 명의 스타가 은퇴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오랫동안 알고 있던 선발투수의 한 형태가 역사 속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느낌이다.
야구는 계속 바뀐다.
앞으로도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는 등장할 것이다.
사이영상 수상자도 계속 나온다.
노히터도 나온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같은 선수가 에이스로 살아남는 이야기는 점점 보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벌랜더의 21년은 특별하다.
9. 마지막 경기까지 야구는 대본보다 극적이었다
벌랜더가 마운드를 내려왔을 때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디트로이트는 피츠버그와 계속 싸워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까지 이상할 만큼 영화 같았다.
9회말.
디트로이트의 신인 에두아르도 발렌시아가 끝내기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타이거스의 4-3 승리.
벌랜더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경기는 팀의 끝내기 승리로 마무리됐다.
한 선수가 21년 커리어를 마치는 날.
오랜 부상을 이겨내고 마지막 선발 등판에 성공하고.
5이닝 이상을 던지고.
딸이 마운드로 뛰어나와 포옹하고.
팀은 9회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한다.
누군가 각본을 썼다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스포츠는 가끔 이런 장면을 실제로 만들어낸다.
이것이 사람들이 스포츠를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경기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다는 사실.
누구도 마지막 장면을 완전히 설계할 수 없다는 사실.
벌랜더 역시 자신의 마지막 날을 완벽하게 계획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완벽한 마지막 날이 됐다.
10. 숫자는 기록집에 남고, 장면은 사람에게 남는다
벌랜더의 커리어를 앞으로 설명하는 방법은 많다.
세 번의 사이영상.
2011년 MVP.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세 번의 노히터.
10번의 올스타.
3,500개를 넘긴 탈삼진.
20년을 넘긴 메이저리그 생활.
기록만으로도 야구 역사에 남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면 모든 숫자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줄어든다.
사람은 숫자보다 장면을 기억한다.
젊은 벌랜더가 디트로이트 마운드에서 100마일에 가까운 공을 던지는 모습.
타자가 따라가지 못하는 높은 직구.
포스트시즌에서 마운드에 올라 상대 타선을 바라보던 표정.
휴스턴에서 다시 정상으로 올라선 베테랑.
그리고 마지막 날 마운드로 달려온 딸을 안고 눈물을 흘리던 43세의 아버지.
벌랜더는 2005년 7월 메이저리그에 등장했다.
그리고 2026년 9월, 마지막 공을 던졌다.
그 사이 야구는 변했다.
선수도 변했다.
팀도 변했다.
그를 보던 팬들의 삶도 변했다.
하지만 마운드 위에서 타자와 승부한다는 한 가지 일만큼은 21년 동안 계속됐다.
마지막 경기에서 벌랜더는 완벽하지 않았다.
완봉승도 아니었다.
노히터도 아니었다.
승리투수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더 벌랜더다운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
부상을 안고도 다시 돌아와.
가능한 오래 던지고.
마지막까지 타자를 잡으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친 뒤 가족과 함께 마운드를 내려갔다.
저스틴 벌랜더의 선수 생활은 끝났다.
그러나 한 시대를 대표했던 투수의 이야기는 이제 기록이 된다.
21 seasons. One final walk off the mound.
그리고 야구는 또 다른 세대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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